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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29. <부정공>연당처사휘완섭행장(蓮塘處士諱完燮行狀)
1. 문헌 목록 〉22. 22世 〉31. <부정공>자하거사휘언섭(연언)행장(梓下居士諱彦燮(淵彦)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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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부정공>원은공휘중섭(연성)묘갈명(原隱公諱仲燮(淵聖)墓碣銘)
原隱公諱仲燮墓碣銘 近古有謹名行重儒敎敎子姪敦實歛藏無求外意而終者曰趙公諱淵聖字華重嗚呼若公非古所謂隱德人也歟公歿后三十七年丁未公之後承將竪石于墓季子休貞草公事行來余謀所以刻之者居在隣里宜其詳公世德也遂按狀而序之曰公初諱仲燮號原隱趙氏玉川著姓高麗門下侍中諱璋爲肇祖三傳諱元吉號農隱封玉川府院君諡忠獻與圃牧諸賢有道義交生諱瑜號虔谷文科副正高麗鼎革自靖守義累徵不起生諱崇文武兵馬節度使 世祖丙子與六臣同殉後 贈兵曹判書諡節愍生諱哲山同父殉節 贈童蒙敎官寔公之十八世祖也高祖諱基春曾祖諱鎭慄 贈通訓大夫軍資監正祖諱寬浩 贈通政大夫工曹叅議考諱秉廉號石溪 贈嘉善大夫工曹判書妣 贈貞夫人慶州鄭氏父星尚 哲宗辛酉五月二十日生公性度寬厚氣宇軒昂未嘗以營利累其心謹儉持身事親奉先竭力盡誠御家衆嚴而濟寬待明友信而有禮敎子課孫各授分職而戒在踐實一生信義修於家而孚于鄉里贄謁于吾叔祖松沙先生多蒙獎詡晩而優老典 陞秩通政以辛巳十一月八日卒墓潭陽大田面金谷後麓子坐配瑞山鄭氏父錫燦丙寅生乙丑十一月二十三日卒墓羅州本良面梅谷右麓酉原生五男長休善出系淵相次休奎休相休哲休貞孫男範勲女朴長根妻長房生吉勲烈勲女鄭貴男妻二房生錫勲安勲三房生憲勲璟勲郁勲載勲女高在德妻季房生曾玄不錄公之立心制行未始不由於敬而濟濟以和不汲汲於文藝之末而益致謹於彛倫之常或以非理要之如不聞也於此可以見所趨之得其正所務之得其要耳銘曰 孝友篤倫信義孚人式薦幽光家聲是振 歲在丁未五月下浣 幸州 奇老章 撰 원은공휘중섭묘갈명(原隱公諱仲燮墓碣銘) 가까운 옛적에 이름을 삼가하고 행실을 신중히 하며 유교로 자질을 가르쳐 실상을 힘써 거두어 저장하고 다른 뜻을 구하지 않고 생을 마친 사람은 조공 휘 연성(淵聖), 자 화중(華重)이라 말하였다. 아, 공은 옛적에 이른바 덕을 숨긴 사람이 아닌가. 공이 별세한 후 三十七년 정미년(丁未年一九六七)에 공의 후손이 장차 묘소에 돌을 세우고자 막내아들 휴정(休貞)이 공의 사행을 초하여 가지고 와서 나에게 각할 것을 의논하니 이웃 마을에 살기 때문에 마땅히 공의 세덕에 자상함으로 마침내 장문을 안찰하여 다음과 같이 쓴다. 공의 初諱는 중섭이요, 호는 원은이며, 옥천 조씨인데, 고려 문하 시중 휘 장(璋)을 시조로 하고 三전하여, 휘 원길(元吉)의 호는 농은이요, 옥천 부원군에 시호는 충헌이며, 포은, 목은 제현과 더불어 교유하였다. 생휘 유(瑜)의 호는 건곡이요, 문과 부정으로 고려가 망하자 스스로 절의를 지켜 충성하고 여러 번 불러도 가지 아니하였다. 생휘 숭문(崇文)은 무과 병마 절도사로 세조(世祖) 병자년(丙子年一四五六)에 사육신과 함께 순절하여 뒤에 병조 판서와 절민이란 시호를 내렸었으며, 생휘 철산(哲山)은 아버지와 함께 순절하여 동몽교관에 증직되었으니 곧 공의 十八세조이다. 고조 휘 기춘(基春), 증조 휘 진율(鎭慄)은 증 통훈대부 군자감 정이요, 조 휘 관호(寬浩)는 증 통정대부 공조 참의이며, 고 휘 병렴(秉廉)의 호는 석계인데 증 가선대부 공조 판서요, 비는 증 정부인 경주 정씨(慶州鄭氏) 성상(星尚)의 따님이다. 철종(哲宗) 신유년(辛酉年一八六一) 五월 二十일에 공이 출생하였는데 성품과 도량이 너그럽고 두터우며 용모와 기질이 뛰어났다. 일찌기 영이로서 그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근검하게 몸을 가지며 어버이 섬기고, 선영 받들기를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며 집안사람을 거느림이 엄하고도 너그럽고 벗을 대접함이 신의와 예절이 있으며, 자손을 가르치며 각기 직책을 나누어 주어 기어이 실천하게 하고 일생 신의를 집에서 닦아 향리에 미치게 하였다. 폐백을 가지고 우리 숙조 松沙 선생을 뵙고 많이 큰 자랑을 받았고, 늦게 노인을 우대한 은전으로 通政秩에 올랐다. 신사년(辛巳年) 十一월 八일에 졸하여 묘소는 潭陽 大德面 金谷 後麓 子坐에 있고, 부인은 서산 정씨(瑞山鄭氏) 석찬(錫燦)의 딸로 병인년(丙寅年) 생인데 을축년(乙丑年) 十一월 二十三일에 졸하여, 묘소는 羅州 本良面 梅谷 右麓 酉坐에 있다. 아들 휴선(休善)은 출계하고 휴규(休奎) 휴상(休相), 휴철(休哲), 휴정(休貞)이요, 손자 범훈(範勲)과 손녀 박장근(朴長根)의 처는 큰아들 소생이며, 길훈(吉勲), 열훈(烈勲)과 정귀남(鄭貴男)의 처는 둘째아들 소생이요, 석훈(錫勲), 안훈(安勲)은 세째 아들 소생이요, 헌훈(憲勲), 경훈(璟勲), 욱훈(郁勲), 재훈(載勲)과 고재덕(高在德)의 처는 막내아들 소생이며, 증손 현손을 기록하지 아니한다. 공의 뜻을 세우고 행실을 단속할 때 처음부터 공경경 「敬」字를 주장아니함이 없고 위의가 있으며 화기가 있고 문예의 끝에 분주하지 않고 더욱 떳떳한 천륜을 삼가며 혹 비리로써 요청하면 듣지 못할 것 같이 하니 이에 가히 그 따른 바 그 바른 것을 얻고 힘쓴 바 그 요긴한 것을 얻은 것을 보겠도다. 다음과 같이 명한다. 효도와 우애로써 천륜을 두텁게 하고(孝友篤倫) 신의로써 사람을 믿게 하였다(信義孚人) 그윽한 빛을 천거하니(式薦幽光) 집안에 성문이 이에 떨치었다(家聲是振) 행주(幸州) 기노장(奇老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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